작성일 : 19-06-19 21:45
강사법 ‘소동’에서 강사가 배운 것
 글쓴이 : 홍보국
조회 : 113  
강사법 ‘소동’에서 강사가 배운 것 
      편상범(고려대 강사)   
    
     "강사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싸우지 않는데
       그 일을 대신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학은 교육기관이다. 그리고 대학의 교육활동은 대부분 강의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 강의의 절반 정도를 강사들이 맡고 있으니 대학에서 강사의 위상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강사들의 현실을 보면 대한민국에서 강사만큼 무시당하는 직종이 또 있을까싶다. 대학 당국에서 강사를 해고하기는 물마시기보다 쉽다. 굳이 해고를 통보할 필요도 없이 그냥 연락을 안 하면 된다. 그래도 강사는 왜 연락이 없냐고, 왜 해고하느냐고 묻거나 따질 아무런 권리가 없다. 경제적인 처우도 이에 걸맞다. 다행이 고마운 연락을 받으면 4달의 강사료를 받지만 그마저 마지막 달은 일 주일분을 빼고 주는 대학이 많다. 마지막 한 주는 강의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다. 성적처리를 하려면 가장 바쁜 일 주일인데 말이다. 방학이 되면 밀린 연구와 다음 학기 강의 준비로 바쁘다. 강의 부담에서 벗어나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방학은 전임교수에게도 강사에게도 참 소중한 시간이다. 그러나 일 년 중 4달이라는 방학기간 중 강사에게는 임금이 지급되지 않는다. 다 아는 구차한 이야기를 이렇게 늘어놓은 이유는, 다 아는 이런 현실이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는지 묻고 싶어서다.
  세상의 무관심 속에서도 강사들의 열악한 상황을 타개하려는 소수 강사들의 처절한(강사 김영곤은 11년 넘게 국회 앞에서 텐트 농성을 하고, 강사 서정민은 목숨을 던졌다) 투쟁과 이에 동조하는 양심들의 노력이 이어졌고, 많은 논란을 거쳐 드디어 2018년 12월 18일에 <고등교육법>이 일부 개정되었다. 일명 ‘강사법’이다. 강사 임용을 1년 이상으로 하고 3년까지 재임용을 절차에 따라 보장하며, 방학 중 임금을 지급하고 직장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등, 강사의 교원 지위 확보와 처우 개선이 강사법의 핵심이다. 그리고 이 법이 오는 8월 1일부터 시행된다.
  사립대학들은 몇 년 전부터 강사법에 대한 강력한 반대와 철저한 대비를 병행했다. 가장 기본적인 대비는 강좌 수를 줄이고 대형 강의를 확대하여 강사의 수를 줄이는 것이다. 강사법이 시행되기도 전인 이번 1학기에 이미 사립대학에서는 6천 6백여 개의 강좌가 사라졌다. 소형 강의가 9천 개가 넘게 줄었고, 대형 강의는 2천 8백여 개가 늘었다. 그래서 드러난 것만도 벌써 1만 5천 명의 강사가 해고되었다고 한다. 이는 강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뜩이나 강좌 수가 부족하여 수강신청 때마다 한바탕 소동을 치르는 학생들의 교육 환경은 더 열악하게 되었다. 이는 명백한 학습권 침해다. 그러나 대학은 자신들의 본질적 기능인 교육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강사법을 기회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시행했다. 이윤을 목적으로 한 일반 기업에서도 보기 드문 과감하고 신속한 조치를 취했다. 강좌수 축소로도 모자라 다른 곳에서 직장 건강보험에 가입하고 오면 강의를 주겠다는 대학도 여러 곳이다. 이른 바 위장취업을 하고 오라는 것이다.                      
  교육부는 대학 당국과 강사 단체를 비롯하여 강사법과 관련한 이해 당사자들과의 협의 끝에 지난 4월 말, <대학 강사제도 운영 매뉴얼(시안)>을 각 대학에 시달했다. 이 문건을 받은 대학 당국의 표정은 아마도 환한 미소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본 강사들의 반응을 요약하면 “분노와 모욕감, 그리고 허탈함”이다. 매뉴얼에는 직장 건강보험은 강사와 무관한 것으로, 방학 중 임금 지급 등 핵심적인 사항이 그저 권장사항으로 되어 있다. 교육부는 그 권고에 따를 대학이 하나라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교육부는 강사법의 입법 취지를 살리려는 노력을 포기했음을, 그리고 악덕 사학의 필사적인 반발이 성공했음을 이 매뉴얼은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매뉴얼에 따르면 강사법으로 인해 대학이 추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별로 없다. 정부의 지원이 없다면 강사법에 따른 강사 고용을 할 수 없다며 반발했던 대학이 머쓱해 할 정도다. 그 동안 공연히 구조조정을 감행하며 소동을 피운 꼴이다. 학생들의 학습권까지 침해하며 강좌 수를 줄인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그러면 이제 대학에서는 사라진 강의를 복구하고 해고된 강사를 다시 부를까? 그럴 리 없다. 매뉴얼에 따라 다음 학기를 준비하는 대학들의 태도를 보면  강사 수를 줄이려는 시도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예컨대 강사들의 주당 강의 시수를 6 시간 이하로 제한한 규정을 악용하여 한 강사에게 반드시 6 시간을 맡겨 강사 수를 최소화한다. 3 시간씩 두 명의 강사에게 맡기나 한 명에게 6 시간을 맡기나 비용은 같은 데 말이다.
  사립대학에서 강사법을 빌미로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이유는 단지 재정적인 이유만이 아니다. 물론 학교 재정이 열악한 사학의 경우에는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클 수 있다. 하지만 몇 천 억대의 적립금을 쌓아 두고 일 조원이 넘는 일 년 예산을 자랑하는 거대 사립대학들의 태도를 보면 이것이 단지 돈 문제가 아님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작년 말, 그 일부가 언론에 공개된 한 유명 사립대의 <강사법 시행예정 관련 논의사항>이라는 대외비 문건에는 그 목표가 ‘시간강사 채용의 극소화’라고 명시되어 있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졸업이수학점 축소, 교과목 수 축소, 전임교원 강의 확대 및 초과강의료 인상, 강의를 많이 하는 교수가 연구실적과 무관하게 승진과 정년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 도입, 명예교수 활용 등을 열거하고 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강사 수를 줄여야 한다는, 비장한 결의마저 느껴지는 문건이다. 이것이 단지 그 대학만의 방침이 아니라는 것을 다른 거대 사립대학들이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대학의 본질을, 그리고 강사란 무엇인가를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교육이라는 기본 목적을 완전히 망각한 저곳은 과연 무엇을 하는 곳인가? 전체 강의의 절반 정도를 담당하면서도 저렇게 배제 당하는 강사는 저들의 눈에 과연 어떤 존재인가?
  강사 문제와 관련하여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학문후속세대’라는 개념이다. 1980년대에 만들어진 이 개념은 대학원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강사를 거쳐 교수로 자리잡는 체제를 전제로 한다. 안정된 강사 자리는 대학원생이 학위를 취득하고 교수가 되기까지 안심하고 디딜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니, 강사 제도는 학문후속세대를 위한 중요한 제도라는 지적이 늘 있어왔다. 그러나 학문후속세대와 강사의 연관성은 오늘날 현실을 전혀 설명해주지 못한다. 특히 인문학의 영역에서 강사는 박사학위를 취득한 신진 학자가 교수로 임용되기 전까지 잠시 머무는 자리가 아니다. 잠시 강사로 일하다 전임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는 80년대 상황이 아니다. 이제 대부분의 강사는 자신의 전문 연구를 수행하면서 평생 강사로 일한다. 강의와 연구라는 대학의 본질적 활동을 수행한다는 점에서는 전임교수와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연구실도 조교도 없이 턱없이 부족한 임금을 받으며 일해야 하는 부당한 차별이 있을 뿐이다. 강사법의 취지는 그들의 역할에 걸맞은 처우를 보장하라는 것이다.
  얼마 전 강사들에게 비교적 우호적인 보직교수와 강사법 문제로 면담할 기회가 있었다. 강사법을 바라보는 전임교수들의 다양한 시선과, 강사 수를 최소화하는 데 가장 적극적인 교수들의 생각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강사법에 강하게 반발하는 일군의 교수들은 강사에게 교원으로서의 법적 지위를 부여하게 되면 전임교수들의 권한과 역할이 그만큼 줄어들 것이고, 강사들은 자신들의 위상과 처우를 개선하고자 “노조를 결성하고 연대할 것”을 우려한다. 이 전언이 면담이 끝나고 오래도록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들의 우려는 강사가 나아갈 길을 비춰주고 있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 긴 세월동안 강사들의 열악한 처우가 개선될 수 없었던 까닭을 분명하게 설명해주기 때문이었다. 강사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싸우지 않는데 그 일을 대신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스스로 돕지 않으니 하늘도 도울 리 없다. 세상이 명분과 설득만으로 변화될 리 없으며, 힘을 갖추어야 비로소 대화와 합의의 자리가 마련된다는 세상의 이치를 새삼 절감한다.
  강사법이 시행도 되기 전에 대학은 이를 빌미로 강사들을 해고하고, 강사법은 내용물이 제거된 빈 깡통이 되어버렸다. 사람을 살리려는 약이 도리어 사람들을 죽인다는 한탄이 강사들의 입에서 저절로 나온다. 그러나 강사를 살리는 약은 강사법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현실 자체다. 여기서 강사들이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다면, 힘과 뜻을 모을 방법을 찾지 않는다면, 강사들의 미래는 물론 대학의 미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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